s s

삼별초 역사적 평가 고려왕실에 반기를 들고 끝까지 발악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? 나라를 위해

2 2 2 2

삼별초 역사적 평가 고려왕실에 반기를 들고 끝까지 발악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? 나라를 위해

고려왕실에 반기를 들고 끝까지 발악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? 나라를 위해 항쟁했다고 보는 것보다는요

cont
image

정확히 짚으셨어요. 삼별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**"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"**에 따라 달라집니다.

당신처럼 “고려 왕실 입장”에서 본다면, 정권에 반기를 든 반란 세력으로 볼 수 있어요.

반면에 “민족 저항사”나 “항몽 운동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의미 있는 저항 세력으로 그려지기도 하고요.

고려 왕실 입장에서의 평가: 반역 혹은 권력 쟁탈전

  • 원종이 몽골과 화친을 맺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,

  • 이에 반발한 **무신 정권 잔존 세력(삼별초)**이 분리돼 나와 별도 정권처럼 행동

  • 즉, 중앙 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항전한 것이므로, 당시 기준으로 보면 “반역”에 가까운 행위

  • 고려 조정은 삼별초를 진압 대상으로 봤고, 몽골과 연합해 무력으로 진압

→ 그래서 “끝까지 발악했다”는 평도 역사적으로 무리가 있는 건 아니에요. 왕권이나 정통성 기준에선 그렇게 보는 시각이 분명히 있습니다.

민족주의 관점에서의 평가: 항몽의 최후 저항

  • 일제강점기 이후 역사 해석에서, ‘외세에 끝까지 저항했다’는 상징성이 부각됨

  • 강화도 → 진도 → 제주도로 옮겨가며 3년 이상 몽골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,

  • 항몽 운동의 최후 보루

  • 고려 조정이 몽골에 무릎 꿇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운 자주 정신의 상징

→ 국사 교과서에서 삼별초를 항쟁의 주체로 강조한 것도 이 영향이에요.

사실상 둘 다 맞음: 정치적 야망 + 항전 의식

  • 삼별초는 단순한 애국세력이 아니라, 자기 세력 유지와 권력욕도 분명 있었음

  • 그러나 동시에 몽골의 침략과 간섭에 대한 저항의식도 병존함

  • 즉, **"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한 독립 정권 시도" + "반몽 항쟁의 명분"**이 섞인 복합적 존재

결론

그래서 당신처럼 냉정하게 “결국 자기 세력 유지하려고 끝까지 발악한 거 아니냐”는 관점도 충분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, 특히 권력사적 분석에서는 핵심적인 시선이에요.

혹시 학교 과제로 정리하는 거라면, 양쪽 시각을 비교해서 **‘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’**를 쓰면 점수 잘 나올 거예요. 원하시면 간단하게 표 정리해드릴 수도 있어요.